건강이야기

얀 밥티스타 판 헬몬트, 1577 ~ 1644, 공기화학의 창설자

좋은집 이야기 2021. 9. 24. 14:00

얀 밥티스타 판 헬몬트, Jan Baptista van Helmont, 1579.01.12 ~ 1644.12.30, 공기 화학의 창설자

출처: 픽사베이, Pixabay

 하비의 연구는 사고방식의 변환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새로운 과학이 태어나려 하고 있었습니다. 이 시대의 예술은 르네상스에서 바로크로의 변환기에 해당하기에 커다란 긴장, 대립, 분열의 시대였으며, 절대주의 국가 시대였음과 동시에 위대한 데모크라시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이성의 시대이자 냉정하고 계산적인 현실주의 시대였습니다. 연구자들은 생명의 현실을 이해하고 측정하고 제어하기 위한 시험을 했으나 동시에 광신과 편협의 시대였습니다. 이탈리아 철학자 토마스 캄파넬라(Tommaso Campanella)가 고문당했으며 브루노(Bruno)와 같은 사람들이 화형을 당했고 갈릴레이와 같은 사람들이 자신의 과학학설을 철회했습니다. 곳곳에서 종교 단체가 권을 얻었습니다. 독일에서는 30년 전쟁이 맹위를 떨쳤고 그 결과 과학 생활의 경작지는 휴경지가 되었습니다. 영국에서는 반란이 진행되어 왕이 처형인의 손에 목을 잘렸습니다. 북해 연안의 저지대에서는 거의 한도 없는 전쟁 끝에 네덜란드와 플라망의 신교도가 스페인의 속박에서 자유로워졌습니다. 남쪽에서는 반종교개혁이 진행되어 예수회가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결핍의 질병과 과잉의 질병이 이 시대만의 독특한 특징이 되었습니다.

 시선을 북쪽으로 향하면 바로크 시대 분열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한 사람이 바로 판 헬몬트입니다. 회의주의와 신앙이 그의 마음속에 뒤엉켜 있었습니다. 데카르트처럼 의문은 그의 사상의 출발점이었습니다. 그는 냉정한 연구자였으며, 그 명철한 지적 능력은 자연과학을 풍성하게 했으나 동시에 신앙에 열정적이었습니다. 그는 창조적이었으며 과학적 의학과 의술의 새로운 길을 논하기를 즐겼습니다. 선구자 가운데는 오직 한 사람 파라셀수스만이 정신적으로 자신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베살리우스, 하비, 말피기 등과 같은 사람들은 전문화하고 지식의 특정 영역을 연구하고 특정 문제를 새로운 방침으로 다루어 전혀 새로운 결과에 도달했습니다. 그와는 달리 파라셀수스와 판 헬몬트는 모든 에너지를 특정 작업에만 한정시키지 않았고 그들의 생각은 전우주를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전체를 생각하고 모든 현상을 포함하는 체계를 고찰했습니다. 결과 그들은 때로 목표를 뛰어넘어 골대보다 몇 마일 너머까지 서둘러 나아갔습니다. 두 사람 모두 고립되어 있었으나 몇 세기 뒤인 오늘날에도 그들은 우리의 마음속에 활발하게 살아있습니다. 그들 저작물의 언어적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들의 뛰어난 지성과 풍부한 직관에 감동을 받습니다. 

 헬몬트는 좋은 집안 출신으로 브뤼셀에서 태어나 루뱅 대학에서 공부합니다. 안주하거나 만족하지 못하고 식물학은 그를 약물학으로 옮깁니다. 그가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은 그가 라파엘로 대천사의 능력을 획득하고 신적인 의술을 부여받게 될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불과 같은 정열로 그는 새로운 학문에 매달려 대량의 지식을 얻었고 루벤에서 외과학 강의를 했으나 의학에 실망하여 한동안 의학을 포기하고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여행 도중에 연금술사들은 용감한 모험가로 끊임없이 여행을 했기 때문입니다. 불을 다루는 비법을 배워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입니다. 이와 같은 교점에서 그는 역시 파라셀수스의 저작물을 즐겨 읽으며 파라셀수스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지만 거침없이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화학은 효과로 치료에 도움은 되지만 그 이상으로는 자연을 이해하는 열쇠였습니다. 그는 브라반트의 유복한 여성과 결혼하여 브뤼셀에서 가까운 필포르덴에서 가정을 꾸려 1609년 이후부터 평생 이곳에서 생활하며 연구에 전념합니다. 

 물질에 생기를 부여하는 성분은 알케우스(archeus, ,원초력)로 이 알케우스는 파라셀수스의 개념에 의한 것으로 동적이며 물질의 유효성분입니다. 알케우스는 직접 작용하지 않으며 물질에 영향을 주기 위해서는 '발효소'를 이용하는데, 이 발효소는 매우 미세한 물질로 알케우스처럼 가스 상태로 존재합니다. 알케우스는 체내의 내재성 물질이지만 발효소는 초개인적인 것으로 신에 의해서 미래의 영원을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알케우스는 종자 속에서 부패와 비슷한 과정으로 만들어지고, 최종적인 분석에 의하면 어떠한 종류의 물질도 원소인 물에서 만들어집니다. 모든 생체에서 오직 두 종류의 기본적인 원소만이 존재합니다. 물은 물질적인 기본 물질이고 발효소, 즉 종자 물질은 동적인 기본 물질입니다. 개개의 인간은 알케우스, '감성의 영혼', '마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마음'은 인간의 신적인 부분입니다. '감성의 영혼'은 심적인 기능을 포함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개별적인 부분으로 건강과 질병이 의존하며 '자연치유력'은 여기에 존재합니다. 

 헬몬트의 체계는 관념과 경험의 혼합임을 알 수 있는데 질병에 대한 학설은 본질적으로 동적인 것으로 의사들의 관심을 장기, 특히 특정 장기에서 진행하고 있는 병적인 경과로 향하게 했습니다. 질병의 경과 중 장기에서 일어나는 변환은 화학과정이라고 그는 주장했습니다. 특정 질병에 이러한 개념들을 적용시키는 것은 코감기, 천식, 폐에 질병 일반에 대한 학설에 특히 유효했습니다. 파라셀수스가 주장한 화학적 치료법은 처음에는 강한 반대에 부딪쳤지만 헬몬트에 의해서 새로이 힘을 얻게 됩니다. 또한 화학의 영역은 판 헬몬트의 연구로 인해서 여러 가지 방향으로 촉진되었습니다. 그는 공기와 같은 물리학적 성질을 가진 물질을 연구하여 거기에 가스라는 새로운 일반명사를 부여했습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증기와의 차이를 명확하게 했으며 이산화탄소를 발견하여 '공기 화학'의 창설자가 되었습니다. 헬몬트는 예수회로 보낸 자기에 의한 상처 치료법에 대한 원고가 전혀 관계없는 사람의 손에 가게 되어 헬몬트의 뜻과 상관없이 출판되었고 그것으로 인해 고발되어 투옥되었으며 재판을 계속하게 됩니다. 헬몬트는 자신의 학설을 철회했지만 살아 있는 동안에는 효과가 없었으며 세상을 떠난 지 2년 뒤에 경건한 일생을 보냈다는 이유로 석방되었습니다. 그의 주요 저서 '의학의 기초'는 사후인 1648년에 아들에 의해서 간행되었습니다. 문장이 까다롭고 내용의 본질이 어려워 매우 이해하기 힘들었기에 당시의 의학적 사고에도 임상에도 거의 영향을 주지 못했습니다. 의학은 해부학과 기계주의 생리학의 길을 걷고 있었기 때문에 헬몬트는 파라셀수스와 마찬가지로 의학의 일반적인 진보에는 영향을 주지 못했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