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첼로 말피기, Marcello Malpighi, 1628.03.10 ~ 1694.11.29, 현미경 해부학 창시자, 이탈리아 생리학자

윌리엄 하비(William Harvey)의 혈액순환 학설에는 동맥에서 정맥으로 혈액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제시하지 못하는 분명한 결함이 있습니다. 순환하는 혈액이 흘러가는 어떤 종류의 경로가 없으면 안 된다는 점은 분명했지만 그 본성은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이 가정의 올바른 내용은 최종적으로 이탈리아의 해부학자인 말피기에 의해서 객관적으로 제시되었습니다. 1661년 그는 개구리의 폐 및 장간막에서 동맥의 말단과 정맥이 모발과 같이 매우 가느다란 관의 망에 의해서 결합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고하고, 이 관을 모세관(capillary tube)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1661년 '폐의 해북학전 관찰' 이라는 논문을 저작합니다. 혈액은 동맥에서 정맥으로, 조직 내 미지의 틈새가 아니라 전신에 존재하는 극히 가느다란 관을 통과하고 있었습니다. 고슴도치의 장간막을 살펴볼 때 모세관뿐만 아니라 그 속의 혈액도 관찰했는데 일정 크기의 조그맣고 빨간 원구가 지나고 있는 것을 보고 말피기는 지방의 알갱이라고 확신했지만 사실은 적혈구(erythrocyte)였습니다. 이것이 가능하게 된 것은 현미경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16세기에는 해부학적 연구가 열성적으로 행해져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으나, 육안으로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장기의 대략적인 구조만 확인되고 구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검사의 눈에서 벗어나 있었습니다.
네덜란드의 안경 제작자가 망원경을 발견했는데 이것을 개조하여 갈릴레이가 복식 현미경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을 사용하여 상상하지 못했을 정도로 조그만 것까지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들 초기의 현미경은 지금 사용되고 있는 것에 비하면 원시적인 장치이기는 했지만 많은 것들을 200배까지 확대할 수 있었습니다. 조이트홀란트주에 있는 델프트(Delft)에 살고 있던 네덜란드 연구자 레이우엔훅(Leeuwenhoek)은 스스로 렌즈를 닦고 장치를 끊임없이 개량하고 세균, 수의 근섬유의 가로무늬, 그리고 뼈의 소체도 관찰하여 런던의 영국왕립협회에 편지로 알렸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장치를 해부학 연구에 체계적으로 이용한 것은 주로 말피기였습니다.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Andreas Vesalius)가 과학적인 육안 해부학 근대 해부학의 창시자인 것처럼 말피기는 현미 해부학의 창시자였습니다. 1628년 이탈리아 볼로냐 근방의 크레발코레에서 태어나 1646년 볼로냐 대학에 입학하여 1653년 철학과 의학 박사학위를 받습니다.
육안으로 보면 개구리의 폐는 막상의 주머니처럼 보일 뿐인데 현미경으로 보니 벽에서 모세관의 망이 관찰되었습니다. 말피기는 이렇게 해서 새로이 열린 길을 나아갔지만 전혀 새로운 땅을 갈아야 했기에 어려움이 컸습니다. 현저하게 강화된 이 현미경은 현재 커다란 도움을 주고 있는 염색법이 당시에 없어 학자의 시력에 의해 발생한 혼란이 있었습니다. 고등 동물로 연구를 진행하기보다는 곤충처럼 단순한 것으로 연구를 하는 편이 유리하다는 사실을 말피기가 발견한 것은 이 때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건이 매우 복잡해서 더욱 단순화하기 위해 식물의 미세 해부학을 연구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진보는 상당히 용이한 것이 되었고 긴 시간에 걸쳐 이 문제를 연구했습니다. 그는 1669년 부터 런던 영국왕립협회 회원이었기 때문에 1671년에 최초의 연구 성과를 '식물 해부학' (plant anatomy, phytotomy)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협회에 보내고 일련의 논문이 계속되어 최종적으로는 식물 현미 해부학의 포괄적인 연구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말피기는 자신보다 13세 어린 왕립협회 간사 네히비아 그루(Nehemiah Grew, 1641~1712)와 함께 식물 해부학의 창시자가 되었습니다.
말피기는 현미경에 의한 고등 동물의 연구를 재개할 수 있겠다고 느낍니다. 그의 눈은 단순한 형태의 검사에 의해서 훈련되어 있었으나 고등 동물로 옮겨간다 해도 복잡해지는 것은 피하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기에 하비처럼 발생학에 전념했습니다. 그의 지도 원리는 하비의 것보다 발전해서 '모든 동물은 알에서부터'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모든 생물은 알에서부터'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부화 초기단계에 있는 13개 정도의 계란을 6시간마다 하나씩 열어보아 계란 속 닭의 발생을 추적했습니다. 선인들보다 장비가 뛰어났기 때문에 훨씬 더 많은 것을 발견했고, 배 전체와 각 장기의 발생도는 당시의 어떤 것보다 뛰어났으며 그 뒤에도 오래도록 그것을 뛰어넘지 못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특정 장기의 미세구조 즉 피부, 혀, 비장, 신경계의 각 부분에 대한 고전적 연구로 나아갔습니다. 1689년 22년간에 걸친 연구 결과인 선(gland)의 구조에 대한 논문을 런던에서 출판했습니다. 이들 선구적인 연구는 그 후의 해부학 연구의 기초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생리학을 풍성하게 해주는 데 공언했습니다. 장기의 구조가 명확해지면 명확해질수록 기능에 대한 이해가 더욱 쉬워졌으며 따라서 생체 전체와 그 장기의 관계에 대한 통찰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말피기는 고향 부근에 있는 볼로냐에서 생애의 대부분을 보냈고 거기서 철학과 의학을 배운 후 피사(Pisa) 및 메시나(Messina)의 교수로 보낸 것 이외 1691년까지 볼로냐 대학의 대학의 강사로 있었는데 그가 해부학 강사가 아니라 임상의학 강사였습니다. 해부학 연구에서는 17세기 이후까지 갈레노스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는데 그들은 말피기의 현미경 연구를 게으른 행동으로 보고 해외에서의 말피기의 명성에 질투하여 여러 가지 방법으로 방해했습니다. 그 방해는 도를 넘어서 별장을 약탈했는데 장치는 파괴되고, 논문은 불태워졌으며 목숨까지도 위태로웠습니다. 말피기는 행복하지 못하고 고통받았습니다. 1691년 교황 이노켄티우스(인노첸시오)의 의사가 되어 로마에 초빙된 것이 도움이 되었고 그의 편지는 밝아졌으나 의료라는 책임감으로 과학을 연구할 수 있는 시간이 현저히 줄었고, 그 후 1694년에 사망하여 편안한 시기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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