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이야기

타렌툼의 헤라클리데스 : B.C. 약 75년

좋은집 이야기 2021. 9. 9. 14:00

타렌툼의 헤라클리데스 : Heraclides of Tarentum, B.C. 약 75년

 헤로필로스(Herophilros)와 에라시스트라토스(Erasistratus)는 위대한 해부학자로 그들의 제자들은 서로 상대를 비난하고 각자 자신들의 선생의 말을 이용하여 논쟁을 벌였습니다. 이 토론의 의미와 사명은 바로 환자를 고치는 일입니다. 철학자들이나 의사들이 일치를 보지 못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의사를 필요로 하는 것을 철학이 충분히 제공했다면 철학자는 최고의 의사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철학자는 현명한 말을 했지만 의술을 이해하지 못했고 의학은 지역에 따라서 달랐습니다. 우선 생명체의 장기가 사체를 해부하는 것과 정말로 같은지 우리는 알지 못하고 같다고 하더라도 장기에 대한 지식은 치료기술에 필요하지 않습니다. 의사가 관심을 갖는 것은 이론이 아니라 실천과 경험으로 질병은 치료의 의해서 치유되는 것이지 말에 의해 치유되는 것이 아닙니다. 타렌툼의 헤라클리데스는 위와 같이 생각한 의사로 그들은 자신들을 경험주의자(임피리시스트)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의 학설은 기원전 250년 무렵에 헤로필로스의 제자인 코스 섬의 필리누스(Philinus)에 의해서 시작되었습니다. 헤로필로스 학파에 속해 있던 헤라클리데스가 기원전 1세기 전반에 경험주의 이론을 만들어냈습니다. 회의주의 철학은 의학 분야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치료학은 순수과학이 되어가고 있었고, 인간의 체질과 질병의 본질이 연구되지 시작했습니다. 논의와 공론이 활발하게 행해졌지만, 실험적이고 정략적인 자연과학의 견고한 기초가 여전히 확립되지 않아 사람들은 아직 집중하는 법을 알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지식을 동시에 얻으려 했기 때문에 그들의 생각은 도움되지 않는 곳으로 향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경험주의가 잘 되는 것은 무미건조한 반응의 산물로 이러한 반응은 유용한 것을 쓸모없는 것과 함께 버리는 자연법칙에 의한 모든 설명을 거부했습니다. 의료는 과학과 대립하는 것으로써 이론에 반대할 권리를 요구했으며 의사들에게 권위적인 업무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거듭해서 논의가 행해졌습니다. 의학은 과학일까 예술일까요? 최종적으로는 수공업 이상은 아니지 않을까요? 히포크라테스 주의자는 수공업자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자이기도 한 의사는 그들에게 있어서 신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예술과 과학, 이론과 실천은 조화롭게 결합되어 있었던 것이 그들의 이점이었습니다. 헤로필로스와 에라시스트라토스는 이론에 편중되었으며 이에 반해 경험주의자들은 실천에 편중되어 양쪽이 모두 일방적이었습니다. 경험주의자들은 학파를 형성하지 않습니다. 경험주의적인 의료자들이 따를 이론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그들은 의학을 흐름을 대표했고 방법을 가르쳤습니다. 헤라클리데스는 이전의 사람과 마찬가지로 경험적인 방법에 대한 대작을 썼습니다. 그는 의학은 경험을 기초로 하고 있으며, 각각의 의사는 주로 자신의 경험을 기초로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일생은 짧고 개인이 모을 수 있는 경험은 빈약하여서 의사는 전통에 의해서 전해진 다른 의사의 경험을 이용해야 합니다. 실천하고 있는 의사는 어떤 학파에 속해 있든 자기 스스로 관찰하여 경험을 모으로 어떤 기원의 것이든 좋은 것을 받아들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경험주의자는 과거의 문헌을 자세히 공부했으며 헤라클리데스는 '히포크라테스 전집'에 대한 주석을 썼습니다. 그러나 진료하고 있는 의사들은 알지 못하거나 병례에 도움이 될 만한 경험을 기록한 것이 없는 예도 다루어야만 합니다. 유추에 의해서 가능한 한 모든 일을 해야만 합니다. 이전까지 알지 못했던 병을 치료할 때는 어느 정도 비슷한 병에서 성공을 거둔 치료법을 실행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도 질환의 부위의 유사성이나 여러 가지 치료법의 비슷한 관계가 도움되어 의사의 행위를 결정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새로운 경험을 모으는 최선의 방법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야말로 경험주의자들이 따라야 할 방침이었습니다. 조상들과는 전혀 다른 과학적 이상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래도 연구를 해나갔습니다. 

 경험주의자들의 눈에 띄게 실제적인 태도를 생각해볼 때, 그들의 시선은 물론 의학의 실제적인 영역으로 향해 있었습니다. 그들의 작업은 증상학에 공헌했고 치료법의 지식에도 관심을 가졌습니다. 치료법은 모든 시대에 있어서 경험적 경향을 강하게 가지고 있어 경험주의자들은 치료에 특히 힘을 쏟았습니다. 헤라클리데스는 한 권의 내과질환 치료서를 쓴 외에 한 권의 외과 질환 치료서도 썼고 식양생에 관한 책도 썼습니다. 이것은 대화 형식으로 제목은 '심포지엄(향연)'이었습니다. 그는 또한 약리학에 관한 다섯 권의 책을 썼습니다. 남아 있는 단편에 의하면 그는 온건한 의사, 명쾌한 사상가, 폭넓은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있어서 선인들에 대한 정당한 비판이 가능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헤라클리데스의 생애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는데 다른 경험주의자의 전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주로 의료에 완전히 헌신했고 의사는 과묵한 이간이어야 하며 유명해지려고 해서는 안 되고 개성은 일의 배경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 가르침 중 일부였습니다. 이 의사들은 매우 성실하여 당연한 사실을 중시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생계를 꾸려가기 위해서 의료를 행하고 있다고 그들 중 한 사람이 부주의한 발언을 했습니다. 그들의 저작은 그저 경험을 편집한 것일 뿐 저자의 성격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헤라클리데스는 예외적으로 그가 경험주의자의 한계를 뛰어넘었기 때문입니다. 

 경험주의자들이 고대의 의학지식을 늘리는 데 공헌했고, 기원전 3세기에 약리학은 급속도로 진보했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경험주의자들의 작업의 결과였습니다. 로마제국 시대의 약리학자는, 클라우디오스 갈레노스도(Claudius Galenus) 포함해서 경험주의자들의 업적을 마음껏 가져다 사용했습니다.  

 이 학파 사람들은 협의의 의학뿐만 아니라 외과학이나 조산학에도 상당히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기원전 1세기에 경험주의자 중 한 사람인 키티온의 아폴로니오스(Apollonius)는 관절에 대한 히포크라테스의 책에 주석을 달고 그림을 실은 것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습니다. 될 수 있는 대로 말을 사용하지 않고 도해로 제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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