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반니 바티스타 모르가니 : 이탈리아 해부학자 Giovanni Battista Morgagni, 1682.02.25~1771.12.06
모르가니는 1682년 로마의 포를리에서 태어나 의학공부를 볼로냐 대학에서 하고 그곳에서 알베르티와 발살바(Valsalva)의 제자였습니다. 모르가니의 생애는 과학자의 생애로 평온했습니다. 그의 시간은 양심적인 교육, 해부실에서의 끈기 있는 노동, 진찰, 동료 연구자들과의 폭넓은 서신교환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18세기에 무엇인가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고 믿는 연구자는 동료 연구자들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의 관찰에 대한 비판을 청함으로 해서 널리 알리기 시작합니다. 이런 종류의 편지는 논문 크기로까지 확대되어 동료들 사이에서 소리 내어 읽기도 하고 전달되어 논의되기도 하고 대조 실험이 행해지기도 하는 등 당시 학자들 사이에서 오고 간 편지는 매우 흥미로운 것으로 그들의 연구실의 생생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인쇄된 논문보다 편지에서 자신의 개성을 자유롭게 표현했습니다. 옛 학자들의 역사와 전기를 알 수 있는 것은, 원고나 때로는 인쇄물로 보존되어 있는 수많은 편지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모르가니는 아주 조금밖에 저작을 간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특별히 양심적인 연구자였으며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생활을 보낸 데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편지를 제외하고는 동시대 사람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반세기가 흘러 모르가니가 거의 80세가 될 무렵 1761년이 되어서야 그는 '해부학적으로 연구한 질병의 위치와 원인에 관한 5권의 책' (The seats and causes of diseases investigated by anatomy)을 출판합니다. 이것은 질병을 특정 장소에 극한 되어 있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질병의 '위치'는 하나의 장기 혹은 몇 개의 장기였습니다. 병원성 인자의 작용에 의해서 장기에 해부학적인 변화가 만들어졌습니다. 이들 변화는 우연한 성질의 것이 아니고, 이것은 개개의 질병을 확정하고 그 본성을 결정하고 병적인 증상의 원이이었습니다. 질병에 대한 이러한 견해는 새롭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병리해부를 행한 사람이나 사람의 장기를 상세하게 연구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해부학적 상태에 이상한 때가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해부체의 대부분은 언제나 젊고 건강한 것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고대에 에라시스트라토스가 장기에서 병리적 변화를 관찰하여 중요한 추론을 했었는데 르네상스가 시작되자 이러한 종류의 관찰은 몇 배나 더 많아졌습니다. 16세기 거의 대부분의 해부학자들은 이러한 종류의 병리적 변화를 깨달았으며 그것을 기재했습니다. 특히 기형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담석과 방광결석의 수집이 행해졌는데 이들 덩어리와 그 외의 이물질은 이상한 조직 변화의 산물이며 악순환에 의해서 한 번 만들어지면 정상적인 기능을 방해했습니다. 17세기가 되자 관찰자들은 이상한 해부 표본을 보존하고 광범위한 관찰을 행합니다. 제네바의 의사 보네(Bonet, 1620~1689)는 '무덤'이라는 제목으로 그가 거론할 수 있는 모든 병리적이고 해부학적인 관찰을 포함한 종합적인 저작을 합니다. 보네는 해부학자가 아닌 수집이었지만, 그 수집물이 얼마나 도움될지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책의 부제는 '실용 해부학'이었습니다. 이것은 의학 임상의 눈으로 쓰인 해부학서였습니다. 이와 같이 해부학은 그에게 있어 '참된 병리학 및 올바른 질병 분류학의 기초'였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관찰에서 올바른 결혼을 얻을 수 없었던 것은 당시의 지식이 일반적으로 적당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해부학적 변화가 병적 증상과 원인관계가 있다고 한다면 관찰자는 우선 거기에 관계하는 장기의 정상적인 기능을 알아야만 합니다. 그러기 전에는 어느 정도까지 이상해진 기능에 의한 증상인지 판단할 수 없습니다. 병리 해부학은 해부학에 기초를 둔 생리학적 지식을 전제로 합니다. 18세기가 되어 할러가 활동할 무렵이 될 때까지 해부학의 개념은 한 단계 진보하여 병리학의 영역으로까지 진전할 정도 새로운 생리학은 진보되어 있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훨씬 전부터 병리 및 해부학적인 관찰의 중요성을 인식한 하비는 결핵이나 그 외의 질병으로 죽은 환자의 해부는 12명의 처형된 죄수들의 해부보다 훨씬 더 도움이 된다고 기술했습니다.
18세기가 되자 관련한 관찰이 급증하여 만투아에서 바로레티(Baroletti)는 폐의 변화를 연구했습니다. 토리노에서는 판토니(Fantoni) 형제가 심장, 비장, 뇌경막의 변화를 조사합니다. 발살바는 청각기관의 정상 해부학뿐만 아니라 병리 해부학에도 흥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모르가니도 같은 방향으로 연구했는데 그는 보네를 포함한 선배들의 연구가치를 알고 감사하게 생각했습니다. 보네와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의 관찰도 기록했으며, 편지를 주고받을 사람들로부터 얻은 정보를 보고 비판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어 필요한 부분을 받아들였으나 주요한 것은 그의 긴 생애 동안에 모은 자신의 관찰이었습니다. 병리 해부학 저서의 개척자였던 모르가니가 엄청난 양의 관찰을 체계적으로 자세히 설명한 것은 불멸의 공적으로 모르가니 이전 시대에는 관찰을 계획 없이 모으거나 한정된 영역을 설명하는 것 이상을 행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모르가니는 베살리우스를 떠오르게 합니다. 베살리우스는 자신의 관찰 결과로써 인간 해부학에 관한 최초의 완전한 교과서를 기술합니다. 모르가니는 새로운 병리 해부학의 첫 번째 행복을 기술하지만 모르가니의 대작이 현재 병리 해부학 교과서처럼 완전한 분류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대략적인 구성으로 개개의 장은 동료 학자들에게 보낸 편지로 이루어지고 임상적인 관점에서 정리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살아 있는 환자의 개별 증상이나 증상군 및 질병을 기재한 다음 그것을 사체해부에서 발견된 해부학적 변화에 의해서 설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모르가니는 오래전부터 사용된 기재 방법인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에 따르고 있어 머리의 질병인 두통과 졸중 등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 대작의 전체는 병례를 모아놓은 것입니다. 빈 대학 임상에서도 같은 식의 병례의 수집이 간행되고 병리해부가 행해져 올바른 평가를 얻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르가니의 병례는 연대별로 나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병리적인 관점으로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모르가니는 개혁자는 아니었지만 병리 해부학의 창설자로 간주되고 1761년은 의학의 역사에 있어서 언제나 중요한 해로 여겨집니다. 자연과학의 개척자임과 동시에 그는 고전에 대한 교양을 가졌으며, 한가할 때는 고고학 연구를 행했습니다. 그는 90세 때 세상을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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