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셀수스 Paracelsus, 1493.11.10 ~ 1541.09.24
스위의 아인지델른에 있는 성모 마리아 수도원 근처의 깊은 계곡에 의사 한 명이 병원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빌헬름 봄바스트 폰 호헨하임(Wilhelm Bombastvon Hohenheim)으로 독일 남서부 슈바벤 계통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결혼 후 이 지역에서 병원을 운영했는데 근처에 베네딕토파 수도원이 있었습니다. 매해 수천 명의 신자들이 참배하러 왔는데 그중에는 의사의 진료를 받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호헨하임이 결혼한 지 2년 뒤인 1493년 아들이 필립 테오프라스토스(Philipp Theophrastus, 라틴어는 필리푸스 아우레올루스 테오프라스투스 봄바스투스 폰 호헨하임)이었습니다. 테오프라스토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후계자로 그는 식물지의 저자였는데 그 책이 그로부터 약 10년 전에 인쇄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소년을 왕진을 데리고 다녀 늘 자연을 접할 수 있게 해 주며 식물과 그 식물의 치료효과에 대해 가르쳐주었습니다. 10세가 되었을 때 아버지는 아인지델른에서 오스트리아 남부 카린티아로 옮겼고 필라흐에서 병원을 열었습니다.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와 아들만 남겨졌습니다. 가까이에 고아산이 있고 채광 학교가 있어 아버지는 이곳에서 가르쳤고 또 퓌거(Fueger) 백작의 제련소가 있었습니다. 새로운 세계, 새로운 자연이 젊은 테오프라스투스에게 열렸습니다. 그는 기술을 배울 기회를 얻었습니다. 원소가 끌어당기기도 하고 반발하기도 하여 새로운 물질을 만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화학분석의 초보를 배우고 그 중요성을 인식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호헨하임은 체계적으로 의학을 배우기 위해 이탈리아로 가게 됩니다. 그의 선생님은 인문주의자 레오체노(Leoniceno)로 히포크라테스의 '잠언집(aphorisms);을 번역하고 고전 저자를 비판적으로 읽은 초기 사람들 중 한 명이자 대플리니우스와 그 밖의 저작에서 수많은 오류를 찾아낸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또한 프라카스토로보다 몇십 년 전에 새로운 '사랑의 역병'을 기재한 최초의 인물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호헨하임은 당시 학생들의 방법, 즉 프라카스토로가 배운 방법과 같은 방법으로 배웠습니다. 그는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인문학자들의 유행에 따라 이름을 파라셀수스라고 라틴어화 했다. 그는 평화로운 연구 경력에 반항하는 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갈레노스에 의한 4체액 학설이나 질의 학설은 논리적이고 의문의 여지가 없어 이성적인 사람들이라면 바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들 학설은 위대한 권위자에 대한 매력에 의해 유지되고 있었지만 그는 이미 자신의 경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연과 접촉하며 성장했고 관찰 방법을 배웠으며 어렸을 때부터 질병과 접촉해왔습니다. 바람이 잘 통하지 않는 교실에서 자유로운 공기 속으로,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참된 예술이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찾지 못할지 모르지만 열심히 찾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난로 옆에 앉아 있기만 해서는 지리상의 발견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순례의 지팡이를 손에 쥐었습니다. 여행을 떠남으로 해서 질병과 치료법을 배웠습니다. 농민, 수공업자, 이발사, 외과의 등 종종 알아둘 만한 가치가 있는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학교수들은 이러한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파라셀수스는 세계 발견을 위한 여행에 나서, 때로는 짧은 기간 동안 중단한 적이 있지만 죽을 때까지 서유럽 전역을 여행하며 돌아다녔습니다. 광산 지역을 찾아가 치료효과가 있는 광천을 연구하며 장기간에 걸쳐서 화학 실험을 행했습니다. 그는 의사로서 임상을 계속하여 가능한 한 환자들을 돌보고 치료했습니다. 그는 의사가 아닌 평범하게 살려고 했으며 제자들은 그와 운명을 함께 했으며 정도가 낮은 수습생에 만족했습니다. 그들은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다양한 부류로 이루어졌습니다. 여행을 하면서 지금까지의 의술의 이론과 치료방법도 잘못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관찰 및 생각을 기록하여 보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생각한 내용을 모국어인 독일어로 적었는데 그중 많은 부분의 개념이 부족했는데 부분 술어를 찾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특히 통풍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고 또한 질병과 건강 생활에 관한 조그만 책 한 권을 써서 '파라미룸(Paramirum)'이라는 제목을 붙여 스케치였지만, 미래의 대작을 위한 초안이었습니다.
'파라그라눔(Paragramum)'은 의술을 지탱하고 있는 네 가지의 기둥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기둥은 철학이나 이 기둥은 자연에 대한 지식입니다. 질병은 자연의 결과이며 치료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번째 기둥은 천문학입니다. 인간에 대한 하늘의 태도는 자식에 대하는 아버지와 같습니다. 하늘은 우리에게 작용하여 우주와의 관계를 인식하지 않고서는 인간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의학의 세 번째 기둥은 화학입니다. 이것은 유효한 약을 제공하여 생물 과정에 빛을 주는 것입니다. 자연은 이상적인 화학자입니다. 그는 유황, 납, 안티몬, 수은, 철, 동을 여러 가지 조합으로 사용하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그는 여러 가지 식물을 대충 섞는 다제투여법에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그는 환자에게 독을 준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모든 것이 독으로 독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어떤 것을 독으로 만드는 것은 양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필수적인 약은 활성 성분으로 이것은 원재료에서 추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파라셀수스가 무기 및 유기의 자연에서의 과정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화학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곳곳에서 3개의 원소 유황, 수은, 염이었습니다. 의학의 네 번째 기둥은 '덕'으로 사랑은 의술의 기초로 진지하고 신을 경외하며 이기적이지 않은 사람만이 좋은 의사가 될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신학에 관한 책, 외과에 관한 책, 질병에 대한 책 등도 저작했습니다.
자연과학의 후원자였던 바이에른의 에르네스트(Ernest) 공작이 파라셀수스를 잘츠부르크로 초빙했을 때 그는 오스트리아 남부의 케른텐에 있었습니다. 초빙에 응했지만 1541년 9월 24일에 그는 지쳐 오스트리아 잘츠부르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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